오심 논란은 이제 그만했으면 합니다.
아래에도 썼다시피, 저는 오심인지 아닌지 확실히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나라가 이러고 있는 것은
시비를 걸고 있는 쪽에 구실을 하나 더 주는 것이며 그야말로 웃음거리밖에 안됩니다.
그 판정이 오심이었느냐 아니냐를 떠나서, 좀더 거시적인 시각에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생각해봅시다.
브라질 히바우두의 누가 봐도 뚜렷한 시뮬레이션은 왜 논란이 되지 않는가?
브라질은 이 시뮬레이션으로 패널티킥을 얻은 덕분에 1:1 상황이었던 경기에서 브라질의 승세가 굳어졌다.
그래, 그 아웃 판정이 오심이었다고 보고, 그렇다면 브라질과 한국에서 오심은 동일한 것 아닌가.
그런데 브라질에게 유리했던 오심은 별 이슈가 안되는데 왜 굳이 한국에게 유리했던 오심은 엄청난 이슈를 일으키는가?
브라질은 당연 4강에 나갈 "자격"이 있지만 새파란 한국은 축구강대국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차례로 꺾으면서 4강에 나갈 "자격"은 아직 안된다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 아닌가?
지금까지 월드컵은 유럽과 남미 두개 대륙의 잔치였다.
그런데 이때껏 1승도 못하던 한국에게 유럽의 축구 초강대국 3개국이 차례로 깨졌다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자존심의 상처를 받은 거 아닌가?
지금 판정 시비를 걸고 있는 나라들을 보면 (중국을 제외하면) 모두가 "우리는 우승의 자격이 있다"
라고 자부하는 나라들이다. 간단하게 이해하자면, 고등학교에서 시험마다 꼴찌를 하던 학생이 어느날
갑자기 4등을 하니까 10위권 안에 있던 학생들이 "저넘 뭔가 수상해"라고 뒷콩까는 거랑 똑같다.
시험치다가 조금만 팔을 이상하게 움직여도 "저넘 컨닝하고 있을걸"하는 거랑 똑같다.
그래, 직간접적으로 한국에 패한 강국들은 그렇다치고, 우리나라 안에서의 논란은 또 뭔가?
혹, 너무 급하게 꼴찌에서 4등으로 올라서버린 우리팀의 급상승세가 너무 부담스럽다고 느끼고 있는 건 아닌가?
혹 다음 월드컵에서 다시 16강에도 진출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기우 때문은 아닌가?
포럼에서건 다른 사이트에서건 오심을 의심하는 의견은 대체로 오랜 축구팬보다는 이번 월드컵에서의 선전을
보고 팬이 된 나와 같은 사람이 많은 거 같은데, 이게 혹 오심을 의심하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지는 않을까?
우린 혹시 너무나 급하게 축구가 우리나라의 중심이 되어버린 것 같은 압도적인 분위기에 소외감이나
불안감을 느끼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시각을 패배주의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패배주의라는 말은 적절한 말도 아니고, 상당히 악의적 혹은 감정적인 뜻이 담긴 단어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우리 국민 내에서 오가는 오심 논란에는 (그 사람이 오심이라고 말하건 혹은
반대로 오심이 아니라고 말하건 관계없이) 어떤 불안감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4강에 진출했던 전적이 있었다면, 외국에서는 물론 우리 국민 사이에서 오심인가
아닌가는 얘깃거리도 안됩니다. 오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또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이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자타가 공인하는 "4강의 자격"이 있는 나라인 것이고,
오심인가 아닌가는 심판의 개인적인 문제일 뿐 그 여부가 특정 나라를 걸고 논란거리는 되지 않는 겁니다.
왜냐, 우리는 "4강의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 내에서 오심논란이 오가는 것은, 실제로 오심이었나 아니었나 때문이 아닙니다.
(아니, 브라질에서 자국의 골이 정당했나 아니었나 따지는 논란이 오간다는 말 들어봤습니까?)
스스로 이정도 급성장한 정도의 진정한 실력과 자격이 되는지를 확신하지 못하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이 점은 오심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니, 이제 오심인가 아닌가를 가지고 논란은 그만합시다.
저도 누가 뒤통수에 대고 궁시렁대는 것은 질색이고, 그래서 기왕이면 애매한 경우가 생기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축구나 어떤 경기이든 애매한 문제가 다반사이기 때문에 심판이 있는
거고, 심판도 사람이기 때문에 오심이 생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문젭니다.
그래서, 저도 다음 독일전에서는 이 지겨운 오심논란이 생기지는 않길 바라는 맘에서 애매한 경우가
생기지 않았으면 하긴 합니다만, 우리가 원하건 아니건 애매한 경우가 생깁니다. 진정한 팬이라면
(저도 자신없습니다만, 우리 모두 그러길 지향하는 것 아닙니까) 판정이 옳고 그름은 경기에서
다반사로 생기는 현실로 인정해야지, 그런 일이 안생기길 바랄 수는 없는 겁니다.
기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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