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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사랑방입니다.
[1828] Re:덧붙여서...
박지훈.임프 [cbuilder] 2764 읽음    2001-09-13 14:28
임프랍니다.

덧붙여서.. 조금 더 써보겠습니다.

이번 이-팔간 분쟁에서, 팔레스타인의 휴전요청을 거부한 것도 이스라엘입니다.
원래 원해서 시작한 싸움이고, 또 기분좋게 때리고 있는데 휴전을 하려고 할 리가 없지요.
팔레스타인이 적당히 반항을 해주고 있으니 공격을 계속할 명분도 살고요.

물론, 엄격히 따지자면 이-팔간 분쟁과, 미국이 이번에 가미가제 테러를 당한 것과는 별개의 사건입니다.
하지만, 미국이 이번에 테러를 당한 것은, 그동안 자국내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유태인들의 목소리만을
반영하고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어온 것에 대한 보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수만명의 희생자가 생긴 이번 테러 사건에 대해 깊은 애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같은 사건이 생겼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면 정말 아찔하도록 섬찟합니다.

하지만, 그 테러 공격을 가한 것이 북한이었다면? 혹은 일본이었다면?
반대로, 그 테러 공격을 당한 것이 북한이었다면? 혹은 일본이었다면?

요즘 북한 문제를 공개석상에서 들먹이는 것이 상당히 부적절하다는 생각은 하지만, 적어도 군사적으로는
아직 우리나라의 주적입니다. 또 그와는 정반대로, 우리의 한 민족이고 언젠가는, 그리고 최대한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통일을 해야 하는 나라입니다. 그런 북한이 미국에 이번 테러를 했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반대로 북한이 다른 나라로부터 그와 같은 테러를 당했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한민족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북한이 테러를 당했을 때 북한과 우리나라의 사이는 팔레스타인과 기타 아랍
국가들과의 사이와 다를 점이 없습니다. 북한이 아직 군사적으로 주적이라는 점만 제외시켜놓고 생각하면,
테러 후 지금쯤 우리나라는 테러를 가한 나라를 박살내버려야 한다는 여론으로 들끓겠지요.
반대로 북한이 테러의 가해자라면, 우리는 지금 테러범들을 욕하듯이 맘 편하게 욕할 순 없을 겁니다.

북한보다, 일본은 훨씬 더 생각하기 편하지요.
일본이 테러를 당했다면? 적어도 반 정도의 한국인이 정말 속시원하다, 몇대 더 때려라, 하고 생각할 겁니다.
수치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그럴 분들이 아주! 많을 것은 자명하지요.

개인의 의견이나 감정은 집단적인 동의에 의해 필요 이상으로 부풀려지고 극단적으로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해자가 미국이 아니라 일본이었다 하더라도 변함없이 분노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반대의견이
많을 때는 무조건 내 생각이 많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지 못하지요.

저번에도 썼지만, 인도주의라든지, 반테러주의라든지, 그런 것은 승자, 강자만이 주장하는 겉과 속이 다른
이상일 뿐입니다. 미국과 같은 오만한 초강대국이 자국은 언제나 옳은 일을 하고 있고, 자국이 응징받을
일은 절대로 없다는 가정을 하고 그런 주장을 펴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이 스스로 수호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런 인도주의의 원칙은, 실제로 팔레스타인이 폭격을 당할 때는
한번도 햇빛을 보지 못했고, 반대로 이스라엘이 테러를 당할 때는 강하게 대두됩니다.

테러라는 말(정확하게는 테러리즘) 자체도 강대국의 사전에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테러리스트가 스스로
테러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영화에나 나오지요. 테러를 가하는 쪽에서는 그냥 공격한다고만 합니다.
사실 최근에 강대국이 "이건 테러야!"하고 지맘대로 이름붙여버린 사건들중의 반 이상이 독립운동입니다.

최근의 용어 사용 관례상, "테러"라고 이름을 붙여버리면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정문제처럼 비추어지기 때문에,
국제사회와 일반 국민들에게 그 사건을 일어나게 한 원인이 뭔지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게 하고 일방적으로
그 주모자에 대한 비난여론만 집중적으로 일으킬 수 있습니다. 정치가들 입장에서는 아주 편리하지요.

"민간인 대상 테러리즘은 무조건 나쁘다"라는 전후를 따지지 않는 고정관념만 가지고는 테러를 막을
수 없습니다. 공항검색을 강화하고 폭발물 탐지기를 몇배로 더 사들이고 하면 테러가 사라지겠습니까.

거꾸로 생각해봅시다. 이번 사건에 있어서, 그 근본 원인을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공격에서 찾고 있는
뉴스나 기사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테러라고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언론에서도 그런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반대로, 이 사건을 처음부터 전쟁으로 봐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비열한 선전포고"라고 인식했다면,
전쟁을 걸어온 넘이 왜 싸울려고 덤비는지에 대한 기사가 집중적으로 보도되었을 겁니다.

부시 행정부는 이런 관념의 차이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테러라고 보도해서 이 사건의
근원적인 시초에 대한 관심이 언론의 촛점이 되지 않게 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저녁부터는 이 사건을
(테러가 아니었다고는 하지 않으면서) 전쟁이라고 부름으로써, 국가에 대한 보복공격을 미리부터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 한번도 외국과의 전쟁에서 전장이 되어본 적이 없는 미국 본토가 박살이 남으로써, 미국 국민들이 받은
충격은 앞으로 몇십년 동안 잊혀지지 않을 겁니다. 부시행정부는 국민들의 불안심리와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대대적인 보복공격을 하겠지만, 그동안 오만의 극치를 달려왔던 미국민들이 받은 충격과 공포를 모두 씻지는
못할 겁니다.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들을 다 박살내지 않는한은요.

이런 미국민들의 충격과 공포가,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번 기회에 미국내에서 자성의 여론이 조금이라도
생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만한 일본인들에게 조금이나마 자성의 기회를 준 것은 원폭의 공포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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