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신 사건은 작년 9월에 발생한 사건이고, 퍼오신 글도 당시에 현지 엄마가 일방적으로
인터넷에 퍼뜨려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던 최초의 글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현지 엄마가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일부러 자신의 추측일 뿐인 경찰의 편파수사를 끌어
들였다고 시인한 바 있습니다. 다음의 기사들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ohmynews.co.kr/article_view.asp?no=55509&rel%5Fno=1
http://www.ohmynews.co.kr/article_view.asp?no=55509&rel%5Fno=2
또, 성추행으로 인한 상처라는 현지엄마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많은 의사분들이 성추행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인 상처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잘 씻어주지 않으면 쉽게 발생할 수 있답니다)
작년에 처음 현지엄마의 글이 올라와서 논란을 일으켰을 때는 재판 전이었지만, 지금은 이미 판결이
난 상태입니다. 올해 2월에 광주지법 1심에서 유죄판결이 났었습니다만, 곧이어 5월의 항소심에서는
무죄판결이 내려졌습니다.
http://www.ohmynews.co.kr/article_view.asp?no=55509&rel%5Fno=3
http://www.ohmynews.co.kr/article_view.asp?no=55509&rel%5Fno=4
따라서, 님께서 글을 쓴 당사자인 현지엄마조차 개인적인 추측을 과장했다고 인정한 바 있으며
법정에서도 무죄로 판결난 상태에서 이 글을 다시 유포하시는 것은 명백한 명예훼손입니다.
사정을 자세히 모르고 퍼날랐으니 별 문제 있겠냐 하실 거 같습니다만.. 근거없는 글을 퍼나른 것도
동일하게 명예훼손입니다.
솔직히 저도 이 사건을 바라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만약 확증 없이 사람을 마녀사냥식으로 잡아족치는 네티즌들의 대책없는 흥분 때문에
무고한 사람이 반년이 넘게 옥살이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무죄판결 후에도 계속 끊임없이 욕을 먹는다면...?
다음은 피의자였던 사무장의 아내 되시는 분이 재판 전에 억울한 심정을 글로서 올렸던 글입니다.
여성으로서 현지엄마의 분노에 더욱 공감하신다면, 역시 여성으로서 사무장 아내의 분노에도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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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번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인 어린이집 사무장의 ‘아내’되는 사람입니다.
청천벽력이었습니다. 날벼락이 따로 없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저희 가족은 이제껏
하나하나 성실히 쌓아 왔던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날려 버렸습니다. 그 충격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지금 어린이 성추행범으로 몰려 구속돼 있는 제 남편은 평소 남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생각하고 같이 아파할려고 노력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내 자신의 처지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헤아리고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보면 자신의 처지는 아랑곳 하지 않고,
갖고 있는 것들을 내주고서야 마음이 놓이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늘 어려운 이웃의 고통을 함께 할려고 애쓰던 사람이었습니다. 학창시절에도 그랬고,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한 다음에도 그랬습니다. 저와 제 남편은 목포의 한 야학에서
같이 일을 하며 만났습니다.
제 남편은 어린이집에서 일을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좀더 나은 어린이집을 만들까 항상
고민해 왔습니다. 대학원을 다니며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또 어린이집 밖에서는 지역사회 발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늘 고민하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사회에서 있어서도 안되고, 영원히 없어져야 할 파렴치범으로 몰려 있는
처지가 돼 버렸습니다. 전 제 남편에게 죄가 있다면 ‘너무 착한 것이 죄’였다고 단정합니다.
혹시 여러분은 경찰서에 가본 적이 있으십니까? 죄 있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아무런
죄가 없더라도 왠지 가슴 떨리고 사람을 주눅들게 하는 곳입니다. 제 남편은 의무경찰로서
경찰서에서 근무를 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경찰서의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남편은 경찰서에서 목소리 한 번 제대로 높이지 않았습니다. 경찰의 막무가내식
다그침에 맞서 대들지도 않았습니다. 경찰관의 책상을 들어서 엎어 버리고 의자를 집어
던지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만약 제 남편이 그때 경찰서에서 난동을 부리며 경찰과 싸웠더라면 결백을 인정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 남편은 성격상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지금 철창안에
얽매인 몸이 돼버렸습니다.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지난 9월11일 이었습니다. 담당경찰과 피해 어린이의
부모가 들이닥쳐 일하던 제 남편을 ‘성추행범’이라며 잡아가는 그 순간부터 제 남편은
‘죄인’이었습니다. 변명할 겨를도 없이 자백을 강요 당했습니다.
담당경찰은 “네가 범인이 확실하다. 감(感)으로 봐도 넌 범인이다”, “결백하다면 왜
맞고소를 하지 않느냐?”, “억울하다면서 화를 내지도 않느냐? 너는 범인이다”며
몰아 부쳤습니다.
대개 경찰의 수사가 피해자 입장에서 이뤄지고, 특히 사건의 성격상 더더욱 피해자
입장을 헤아려야 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관행도 좋습니다. 하지만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상황이 피해자의 주장과는 하나도 들어맞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경찰이 직감으로 다그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경찰의 직감수사는 계속됐습니다. 경찰은 또 “당신이 아이를 강제 추행하지 않았다면,
왜 진단서에 ‘소음순 다발성 찰과상 및 요도염’으로 3주의 치료를 요하는 진단이
나왔겠느냐”고 제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아이의 옷을 벗기고 성기를 입에다 집어넣는
등의 추행을 한 것이 분명하다”, “단 1초라도 성추행은 가능하다”면서 제 남편의
모든 얘기는 묵살해 버렸습니다.
“4살 먹은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당신은 사회경험이 많은 어른이어서 계속
거짓말만 하고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사건을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수사해야 할
경찰관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까지 퍼부으면서 자백만을 강요했습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의 시야를 벗어난 적이 없다”고 진술하는 담임선생님에겐
“아이가 당신 신체의 일부분이라도 되느냐”고 일축해 버렸습니다. 담당 경찰은 제
남편에게서 자백 외에 다른 대답은 아예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또 피해자에게는 “증거자료가 필요하니 녹음기를 준비해서 가해자와의 대화를 녹음하라”
고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용의자로 조사를 받고 있는 제 남편에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청원(請援)제도’가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조차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다른 병원에 같이 가서 아이를 다시 한 번 검사해 보자”는 저희의 의견도
무시해 버렸습니다.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다행히 두 차례의 영장이 기각됐지만, 너무나 어이가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물론 주변 사람들한테 하소연 한 마디 안하고 넋을 잃고
있었습니다. 이 틈에 상대 아이의 엄마는 인터넷을 이용해 네티즌들의 동정심에 호소를
했습니다. 여기저기서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이 과정은 여러분들이 너무도 잘 알고 계실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결국 제 남편은 민족의 대명절이라는 추석을 목전에 두고 구속돼 저와, 제 남편이
그토록 사랑하던 두 아이의 곁을 떠났습니다.
검찰에선 구속영장 집행의 사유로 “아이가 성추행의 기억을 또렷이 하고 진술을 일관
되게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와 부모는 분명히 처음에 추행장소로
차안을 지목했다가 나중에 책상으로, 컴퓨터 앞으로, 소파로 계속 바꾸었습니다.
또 밖에서 다른 아이들이 보았다고도 주장했었습니다.
성추행 날짜도 처음에 8월말경에서 8월27일, 9월10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제 남편의
알리바이는 모두 성립됐습니다. 성추행 사실도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되자
지금은 막연하게 ‘9월초순경 점심 먹고 난 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어린이집에서 가까운 조그마한 기업체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 동안
회사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의 점심 제공이 중단된 9월3일부터 저는
유치원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 아이와 부모의 주장대로라면 저의 남편은 “제가
보는 앞에서 어린아이를 성추행 했다”는 것입니다. 어안이 벙벙할 따름입니다.
4살된 아이가 17일 밖에 다니지 않았던 어린이집의 차 이름을 ‘스타렉스’라고 또렷이
기억을 한답니다. 하지만 자기네 식구들이 늘 같이 타고 다니는 아빠의 차 이름을
모른다는 부분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습니다.
어린이집에선 또 모든 사람들이 제 남편에게 ‘사무장’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스타렉스 아저씨’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4살된 제 둘째 아이도
어린이집에선 ‘사무장님’이라 부르고 있을 정도니까요.
“스타렉스 아저씨가 왜 나쁘냐”고 묻는 경찰관의 질문에 “나쁘게 생겨서 나쁘다”고
대답한 아이의 진술이 일관성이 있다는 것입니까? 이처럼 진술이 일관되기 때문에 그
아이가 제 남편에게 성추행을 당한 것이 확실하다고 본다는 말입니까?
또 그 아이의 엄마도 그렇습니다. 아이의 몸 상태가 이상하고 어린이집에서 그랬을
것으로 추정된다면 일단 어린이집이나 담임선생님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는 것이 순서
입니까? 경찰서에 고소를 하는 것이 먼저입니까? 대다수 엄마들은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한테 먼저 전화를 하거나 찾아가서 아이의 하루 일과를 확인해 보았을 것입니다.
할 말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억장이 무너집니다. 단지 제 남편이 성추행을 하지 않았다는
그 결백 하나만을 믿고 참고 있기엔 울화통이 터져 미칠 지경입니다. 상대 아이 엄마의
일방적인 말만 듣고 이 지경으로 몰아 간 경찰이 죽이고 싶을 만큼 원망스럽습니다.
이미 제 남편은 많은 사람들한테 인륜을 저버린 ‘파렴치범’으로 각인돼 있습니다.
저는 인간 이하 ‘파렴치범의 아내’가 돼 있고, 제 아이들은 ‘파렴치범의 자식들’이
돼 있습니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제 와서 아동심리 학자의 도움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번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가 되어 고통받고 있는 저희 가족은 이 세상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마치 범행현장을
목격이라도 한 사람처럼 “제 남편을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키고 매장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저희 식구들도 어느새 ‘죄인 아닌 죄인’이 돼 버렸습니다.
저희 부부는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8살 난 아이와, 상대 아이와 같은 반에서 17일동안
함께 어울렸던 4살 난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지금 아빠가 유치원 일로 멀리
출장간 줄 알고, 아빠가 빨리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눈만 뜨면 “아빠 언제 와?”.
“아빠 보고 싶어! 빨리 오세요”.
“아빠 미워. 우리한테 전화도 안하고”.
“엄마! 아빠는 왜 전화도 안 받아”.
아이들은 속도 모른 채 밤마다 아빠의 휴대폰에 전화를 걸어 댑니다. 가끔 전화벨이
울리면 ‘혹시 아빠일까’ 서로 먼저 받을려고 달려가 싸우다가 전화기를 붙잡은 채
잠에 들곤 합니다.
저는 이 아이들에게 어린이 성추행범으로 몰려 이미 만신창이가 돼버린 아빠의 모습을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날마다 함께 뒹굴며 뛰놀았던 다정하기만 했던 아빠를 기다리는
것이 어째서 우리 아이들의 간절한 소망이 됐단 말입니까?
오로지 아빠가 빨리 돌아오기만은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앞으로 이 세상을 어떻게
살라고 가르쳐야 한단 말입니까? 제 남편의 인생도 인생이지만, 우리 아이들의 미래
까지 암담하게 만든 이 굴욕을 평생 어떻게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단 말입니까?
나중에 제 남편의 결백이 밝혀져 다시 돌아오더라도 이미 덮어씌워진 이 치욕과 상처는
누가 치료해 준단 말입니까? 제 남편과 저희 가족, 저희 어린이집의 더럽혀진 명예는
또 무엇으로 씻어야 한단 말입니까?
제 남편과 저희 가족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 준 이번 일을 어떻게 용서
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