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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5] 한겨레... '국방의 의무가 포상.흥정의 대상인가?'
박지훈.임프 [cbuilder] 1997 읽음    2002-06-19 16:20
16강에 진출한 영광의 주인공들에게 병역면제가 과연 적절한 포상인가?
단지 제가 군대를 '억울하게도'(?) 26개월을 다녀왔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병역 혜택이 아니라 포상금을 준다면, 개인적으로는 전국민의 세금을 10%씩 올려서 국가 예산의
10%쯤을 포상금으로 줘버려도 아깝지 않은 마음입니다. (어마어마하겠지요?)
아래 기사에서처럼, 병역의 의무는 포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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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의 의무가 포상.흥정의 대상인가?

온 국민이 어쩌다보니 모두 한마음으로 염원한 월드컵 16강 진출이 이루어졌다. 목표가 달성되기 전부터 간간히 나오던 '16강 진출시 병역특례'가 현실화되었다.

그것도 16강 진출이 확정된 지 3일째 되는날, 근무일로는 이틀째 되는 날 차관회의를 통과했고 그 16강전이 열리는 날 오전에 국무회의를 통과하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빠르기로 이루어졌다. 홍명보 선수의 대포알같다는 중거리슛이 이만큼 빠를까.

여기서 그 장하디 장한 16강 전사들의 공적을 깎아내리거나 병역혜택만큼은 반대한다거나, 다른 체육 종목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국방의 의무는 신성하다든가, 조국의 산하를 지키는 것은 국민의 영광된 책무라는 둥의 독자 귀가 자발적으로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피부가 인간의 그것보다 삼계탕 속 닭의 그것이 될 말도 할 생각이 없다.

다만 한 마디 할 것은, 국방의 의무를 국민 개개인에 지우는 데에 있어서 반드시 지켜져야 할 원칙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공평성이다.

공평성이란 '누구는 떡 하나 주고 누구는 떡 두 개 주는' 데에 있어서도 지켜져야 하는 것이고, '누구는 떡 하나 내어 놓고 누구는 떡 두개 내어 놓는' 데에 있어서도 지켜져야 하는 것임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부 특권층 자제나 연예인들이 국민 전체 평균에 비해 월등히 높은 병역 면제/공익 근무 비율을 보이는 현상에 대해, 일면 그들의 건강치 못한 신체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도 대체로 병역법의 허점을 헤집어내고 신체등급을 조작해줄 군대 내의 실무실세를 찾아헤매는 그들의 노력에 감탄하면서도 화려한 육두문자 세례를 퍼부어주는 것을 빼먹지 않는다.

너무 당연한 말을 써서 조금 창피함을 느낀다. 우리 모두 손잡고 군대를 가자는 글이 아니다. 병역의무는 공평성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그 특징 때문에 결코 거래, 흥정의 대상이 되어선 안된다는 말을 하려고 한다.

현행법상 병역의무의 공평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는 이러하다. 신체등급이 현역에 부적합한 경우 공익근무요원으로서 더 긴 기간을, 군대에서 공짜로 주는 아침저녁 식사도 없이 근무하도록 되어 있다. 즉, 국가 입장에서 보자면 공익근무요원과 현역 군인은 공평하다. 개인의 입장에선 좀 더 편하고 집에서 출퇴근할 수 있는 공익근무요원을 선호할 수 있겠지만, 국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강화된 신체등급 규칙은 장애인이나 심각한 진행중인 질병이 있지 않는 이상 공익근무요원으로라도 복무토록 만들어져 있다.

흔히 병역특례라고 부르는 이공계 전문연구요원의 경우, 공평성을 보장하기 위해 근무연한이 5년이며, 근무처 선택의 자유와 전직의 자유, 해외여행의 자유를 다소 제약하고 있고 해외근무는 불가능하며, 특별한 경우 '국방부 시계를 잠시 멈추고' 단기적으로 해외근무가 가능하다. 산업기능요원의 경우 대학원 미만의 학력에 관련자격증을 취득하면 3년간 근무하며 근무조건은 전문연구요원과 비슷하거나 약간 못하다.

이번에 16강 전사들에게 적용된 '문화 체육 분야에서 국위 선양에 기여한 자'의 경우엔 올림픽 3위 이내, 아시안게임 1위의 경우로, '3년간 자기분야에 종사'하는 것이 유일한 제약조건으로, 출근부나 근무상황판도 없고, 박찬호의 경우처럼 외국에 진출하는 데에도 아무 제약이 없다. 이번에 '월드컵 16위 이상'이라는 조항이 추가되었다.기초군사훈련 4주는 모든 특례의 경우에 공통적이다.

다시 공평성의 문제로 돌아가보자.

연초 이공계기피현상이 불거지면서 이공계 대학 교수들과 학생들이 문화체육계와의 형평성을 주장하며 근무기간 단축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화체육 병역특례의 경우, 일정 성적이라는 높은 기준이 적용되고 국위 선양이라는 명분이 있기에, 비교적 일반적이고 대상자가 매해 수천명에 이르는 전문연구요원과는 애초에 다른 점이 있었다. 때문에 받아들여지기엔 견고한 벽이 있음을 이전부터 알았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에도 수긍하거나 포기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즉, 이공계의 경우엔 '대체복무'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 문화체육계의 경우엔 '포상'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공계기피현상의 해법으로 제시된 여러 방법중에서, 특히 정부부처에서 만들어 낸 대책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병역문제이다. 과학기술부의 대책을 보면 병역특례를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있고, 얼마전 발표되었다가 이틀만에 국방부로부터 '쿠사리'를 먹은 산업자원부의 산업인력 수급대책에는 병역특례 확대와 복무기간 단축(기존의 60개월에서 42개월로)이 들어있었다.

국방의 의무를 면해주는 것이 '포상'의 성격을 띄고 있었던 데에서 한발 더 나아가, '흥정'의 대상이 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병역 혜택을 줄테니 돈 많이 버는 의사되지 말고 미래가 불확실한 엔지니어가 되라고 유혹한다. 정부부처와 기업체, 그리고 연구, 산업인력까지 나서서 국방의 의무를 놓고 흥정판을 벌이는 셈이다.

정부부처 사이에서도 병역특례 추천권을 쥔 과기부, 교육부는 병역자원의 원소유주인 국방부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고 갑자기 끼여든 산자부는 일언지하에 무시당하는 망신을 당했다. 그런 와중에 월드컵 16강에 올랐고, 문화관광부와 국방부 사이의 차관회의에서 '월드컵 16위 이상'이라는 문구를 법조항에 추가하자고 전격 합의해 버린 것이다.

군대 안 가게 해주는 것이 '포상'이 되는 나라, 군대 안 가게 해주는 것이 '유인책'이 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포상이 되고 유인책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우스운데, 명망 있는 사람들의 서명운동으로도 특별 케이스가 생기고(바둑기사 이창호의 경우), 온국민이 일시에 이뻐한다는 집단심리로도 법조항이 바뀌는 것을 보면 국방의 의무가 그토록 만만한 것이었나 싶다.

병역의무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걸 보면서, 정작 씁쓸함을 느끼는 사람은 현역으로 제대로 군대를 마친, 또는 복무중인 사람들이다. 건강한 정신과 신체를 가지고 가장 보편적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한 사람들이 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비애를 느껴야 하는가?

대체복무의 형태는 다양할 수록 좋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도 정당한 인권이 보장되길 바라지만, 병역의무가 포상과 흥정의 대상이 되는 것은 중단되어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기존의 병역특례제도에 대해 합리적인 수정 보완이 이루어지고 보다 선진적이고 공평정당한 대체복무제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으면 한다. 여론 봐가며 특별한 경우를 슬쩍 집어넣거나 대통령의 한마디에 3일만에 국무회의를 통과하는 일이 다시 있어선 안된다.


하니리포터 박상욱 기자 / cutewolf@plaza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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