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디넷(
http://www.zdnet.co.kr/)에서 퍼왔습니다.
"음모론의 배후는 초고속망을 구축한 DJ다(?)"라는 얘기죠.
물론 실제 金心(즉, 동교동界의 지지)은 이인제에게 있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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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춘희의 IT 눈대목] 인터넷이 노무현과 이회창을 검증한다
유춘희 (한겨레 Economy21 차장)
2002/04/30
노무현 씨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됨으로써 이회창 씨와 대결할 공산이 커졌다. 한나라당 예선을 가볍게 넘을 것으로 보이는 이회창이지만 본선에서 노무현을 상대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이회창과 참모들은 '이러다가 잘못하면…' 하고 분명 위협을 느낄 것이다. 여러 여론조사 결과도 갑자기 튀어나온 노무현에게 쏠리고 있으니, 이제까지 들인 공이 많은 이회창으로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이 들기로는 이인제만 할까. '대세론'이란 단어로 언론들이 자신과 이회창 둘만 고정출연시켜 주었는데, 허탈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대세론이 깨지니 그에게 '음모' 말고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참으로 구차한 핑계였다. 국민들이 기존 정치판의 지겨움에 얼마나 냉소를 보냈는지, 20대가 왜 박근혜를 찍겠다고 하는지 이유를 몰랐던 거다.
“초고속망 구축이 음모의 시작”
어떤 언론인의 이인제 음모론 진단이 참 재미있다. 음모가 있긴 있었다는 것이다. 무슨 음모? "DJ 정권의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이 바로 음모의 시작"이란다. 노무현 바람은 인터넷에서 시작했다는 얘기다.
비유가 재밌지만 사실이 그랬다. 인터넷으로 선거인단을 모집하고 전자적으로 투·개표를 진행한 대선후보 경선이 그렇고, 노무현을 후보로 만든 원동력 '노사모'의 활동 무대도 인터넷이었다. 노무현의 거침없는 말투도 인터넷 게시판 방식이었다.
초고속망 구축 음모(?)는 노무현을 염두에 두고 DJ 정권이 짜낸 게 아닐 터이다. 누구든 재빨리 이 음모를 활용했어야 했는데 유력 후보 두 명은 너무 고리타분했다. TV는 매주 토론회를 열고, 인터넷은 경선장 상황을 서너 시간 동안 생중계하고, 후보들의 웹사이트는 치열한 국민 토론장이 된 상황이었다. 신문·잡지처럼 편집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니, (다른 대권주자들에 비해) 노무현이 신선하고 솔직하게 느껴졌을 법 하다.
젊은층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노무현 바람이 연말 대선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지역과 색깔을 들먹이고, 언론이 껴드는 한국형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하나는 노무현의 부상이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확인해주었다는 사실이다. 재벌이 돈을 대며 미래를 보장받고, 언론이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이제까지 관습을 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밑(인터넷)으로부터의 혁명을 불렀다.
노무현 지지자의 상당수는 386세대라고 한다. 컴퓨터 1세대로 인터넷을 토론과 의사소통의 장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원조가 그들이다. 386세대의 이념적 무기, 인터넷에서 노무현은 이미 '대통령'이다. 필자의 느낌인지 몰라도,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 <딴지일보>, <대자보>, <뉴스보이> 같은 미디어의 지지를 한몸에 받고 있고, 거기서 노무현을 건드리면 집중 반격의 대상이 된다. 이들 미디어의 성향이 원래 좀 그렇기도 하지만 왜 이런 사이트가 유독 많은지도 생각해볼 문제다.
클릭 한번으로 대통령을 만들어라
본래 네티즌들은 여기저기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할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서기 좋아하는 ‘간섭쟁이’들이다. 자신의 견해와 조금 다르면 심한 경우 욕설까지 퍼부으며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안티조선 사이트인 <우리모두>의 슬로건은 ‘조금씩… 천천히… 하지만 악랄하게… 또박또박…’이다. 이처럼 끈질길 수 있을까. 점잖은 어르신이 보기에는 예의범절이라고는 없는 철부지 어린애에 불과하다.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부류들은 네티즌의 성화가 꽤나 성가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철부지가 아니다. 필자는 인터넷을 통해 정치적 신념을 펴는 네티즌의 일반 성향은 보편타당한 것을 가치로 삼고 있고, 사이트의 분위기도 건전한 상식이 지배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다만 지역감정 문제에 광분하거나 특정인을 인신공격할 때 표현방법이 도가 지나친 면이 많다.
그러나 마냥 그렇게만 보다가는 큰코다친다. 그들의 파워가 이미 노무현이라는 이변을 나았다. 공간만 사이버일 뿐 그들의 생각과 의견은 현실에 붙어있다. 좋은 도구도 쓰기 나름이다. 낡은 사고방식으로 선거를 준비하는 후보에게 인터넷은 위협일 것이고 새 정치 문화를 고민하는 후보에게 인터넷은 기회가 될 것이다.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는 지역감정 자극이나 빨갱이 색칠은 득달같이 달려드는 네티즌 앞에선 무력해질 것이다.
자, 검지손가락 한번 딸깍해서 대통령을 만들 수 있는 시대다. 정치적 의도를 가졌든 가지지 않았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사람 모두가 대통령을 만들 수 있다. 물론 대통령이 안 되게 만들 수도 있다. 네티즌들은 이미 올 대선을 접수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그들의 활약이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