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예전부터 책을 읽고 나서나 인터넷 게시판 같은 곳을 둘러보다가
좋은 글이다 싶어서 이래 저래 모아둔 것들이 있습니다
혼자 보는 것 보다는 여러 분들과 같이 보는게 좋을까 싶어서
이렇게 게시판에 올립니다
설마 저작권 문제 때문에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건 아니겠죠????
그럼...
==========================================================================================
김현구 교수의 일본 이야기
(pp 187 - 190)
한국의 근대화는 일본의 지배 덕택 ?
일본의 술집 같은 곳에서 우연히 일본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35년간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면서 도로를 닦고 철도를 놓고 공장을 지어준 결과 한국이 오늘날과 같이 근대화될 수 있지 않았느냐"고 의기양양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을 흔히 듣게 된다. 일본의 한국 지배가 한국에게 고통을 주었다기보다는 크게 기여했다는 주장이다.
나도 일본에 유학 간 지 얼마 안되었을 때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다. 한국 대사관
근처에 있는 술집에서 대사관에 근무하던 선배와 한국사를 전공하는 은사로 당시와세다대학에 와 계시던 K교수를 모시고 술을 마시다가 옆자리에 있던 일본인에게 그런 질문을 받고 화가 나서 언쟁을 벌였던 것이다. 그때까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그런 질문을 갑자기 받고 보니 무척 화가 났다. 아무 준비 없이 목소리만 컸으니 그 사람을 납득시킬 만큼 제대로 대답을 했을 리 없다. 거기에다가 일본말도 서툴렀으니 어떻게 대답을 했을지 상상이 간다. 나중에 돌이켜보니 무슨 말을 했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내 말이 답답했는지 아니면 화가 나셨는지 나중에는 K교수께서 나 대신 나서서 언성을 높이며 논쟁을 하게 되었다. 결국 입장이 난처해진 대사관 선배가 나서서 겨우 말린 적이 있다. 이런 경우를 당하게 되면 나나 K교수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화가 나고 흥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화를 내지 않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했더라도 그 일본 사람이 납득하고 승복할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그 뒤에 공부에 열중하느라 술집에서의 논쟁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1985년에 귀국하여 고려대학교에서 일본 역사를 가르치게 되었다. 그런데 근년에 일본 지도자들이 일제의 한국 지배 때문에 오늘날 한국의 근대화가 가능하게 됐다는 망언을 되풀이 하고 그것을 매스컴이 크게 문제삼고 나오자 유학 초기 대사관 근처 술집에서 벌인 일본 사람과의 논쟁이 생각났다. 게다가 내가 가르치는 과목이 일본 역사이니 만큼 우리 학생들은 과거에 내가 받은 것과 똑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떤 반응을 하고 어떻게 대답할까 싶어서 똑같은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져보았다
그랬더니 거의 모든 학생들의 반응이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
3자나 일본 사람이 듣고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말해보라고 했더니 대부분의 학생들
이 흥분해서, 일본의 침략을 받지 않았다면 더 잘 살 수 있었을 것이라든가 우리가 얼마나 고통을 받았느냐는 식의 대답만을 할 뿐 금방 수긍할 수 있는 시원스러운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내가 '여러분은 자신들의 답변에 납득이 가느냐'고 되물었더니 학생들은 입을 다문 채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결국 학생들도 흥분만 했지 일본 사람들을 납득시킬 만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니 일본 사람들이 우리 주장에 승복할 턱이 없고 따라서 자기들의 주장을 철회할 리도 없다.일본측에서 망언이 나올 때마다 우리나라 매스컴들도 흥분해서 떠들어대기만 하지 논리적으로 어디가 왜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니까 국민이나 학생들도 매스컴에서 보거나 듣고 흥분만 하지 설득력있는 답변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자기들이 도로나 항만을 건설하고 공장을 세웠기 때문에 한국의 근대화가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기가 없는 곳에 텔레비젼이나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팔려고 하거나 전기가 필요한 공장을 세우려고 해서는 성공할 턱이 없다. 그리고 물이 없는 곳에서 벼농사를 지으려 하거나 노동력이 충분하지 못한 곳에서 노동집약적인 산업을 일으키려고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도로와 항만을 건설하고 공장을 세웠다는 것은 당시 한국에 이미 그럴 만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당시에 한국이 이미 그러한 근대화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면, 일본이 아니더라도 한국 스스로 도로나 항만을 건설하고 공장을 세워서 근대화를 시작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것은 여러가지 면에서 메이지 유신 이전에는 우리가 일본에 별로 뒤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당시에 아프리카에다 도로나 항만을 건설하고 공장을 세웠다면 아프리카가 오늘날 한국처럼 근대화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볼 때 이 사실은 더욱 자명해진다.
한국이 이미 스스로 근대화를 이룩할 수 있는 단계에 와 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일본에 의해서 타율적인 근대화가 이루어짐으로써 한국 국민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당했고 지금도 왜곡된 근대화의 피해로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어떻게 일본 때문에 한국이 근대화되었다는 말을 할 수가 있겠는가.
게다가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주고 착취를 가한 한국 국민들에게 사과 한마디 없을 수 있는가. 일본 사람들의 주장에 언론이 흥분해서 문제만 제기하지 논리적인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고, 학생들도 화만 내지 제대로 답변을 못한다는 것은일본에 대한 우리의 교육이 감정에 치우쳐 있고 객관적이고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일본에 대해서는 누구나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일본 이야기가 나오면 누구나 한마디씩 하는데 사실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언론이 나 학생들은 일본 사람들의 주장에 대해서 흥분하거나 화만 낼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내가 일본 술집에서 당했던 것처럼 당황하여 화만 내지 제대로 대답도 못하는 일을 언제 어디서 겪에 될지 모른다.
============================================================================================
제가 일본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책들을 많이 보는 편인데
"김현구 교수의 일본 이야기" ... 정말 좋은, 멋진 책입니다
혹시 사정이 되신다면 꼭 한번 사보라고 권해드리고 싶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