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 영화 평론인데요
통신 게시판에서 인기리(?)에 조회수를 올리고 있는데
차마 가만히 놔두기 너무 아까(?)워서 말이죠
그런데 글이 참 황당하게 웃기는게 차마 happy 하지 않아서
여기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참을 수 없는 영화의 가벼움
[전여옥의 My Culture & Life]
‘예술’이 아닌 ‘상품’인 영화가 권위있는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는 요즘이다. 슬프지만 가볍고, 접속하지만 깊은 관계 설정을 거부하는 ‘디지털 패러다임’으로 모든 영화가 건너가 버린 걸까?
요즘 몇 편의 영화를 열심히 보았다. 일단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보았고 ‘반지의 제왕’을 보았다. 또 ‘물랑루즈’도 보았다. 그런데 솔직히 떨떠름하다. 이 가운데 ‘해리포터…’는 그런 대로 구성력이 뛰어나다는 생각을 했지만 뭐 그리 썰렁한 영화다 싶었다. ‘반지의 제왕’은 정말 대단했다. 일단 영화광인 내가 영화보다 졸아본 것은 머리털 나고 처음이었다. 저녁 9시 마지막회를 보았다고 해도 심했다. 엄청난 그래픽 효과로 치장한 기죽이는 도입부를 보고 ‘뭔가 있나보다’하는 기대를 갖게 했으나 무려 3시간 내내 쫓기고 쫓아가는 신경전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대사는 물론 구성력까지 왜 그렇게 치졸한지 한심했다. 물론 하이라이트는 결말이었다. 본전 생각도 나고 해서 졸다말다 하면서 그래도 끝까지 ‘결판을 내리라’하며 보았는데, 그 유명한 엔딩은 무엇이었는가? ‘2002년 크리스마스, 제 2편을 기대해 주세요’였다. 배신감에 치를 떨며 내 앞에 조지 루카스가 있었다면 뼈도 못 추렸을 것이라고 이를 부드득 갈았다.
‘물랑루즈’는 한술 더 떴다. 최근 니콜 키드먼은 눈부신 연기의 발전을 보였다. ‘투다이 포’의 요부 역과 ‘와이즈 아이즈샛’에서 무척 힘든 역할을 소화하는 저력을 보였다. 톰 크루즈가 없어도 충분히 독립할 여배우였다. 그렇지만 ‘물랑루즈’에서는 우스꽝스러운 역할을 너무도 진지하게 소화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물랑루즈’는 현란한 색감을 곁들인 뮤지컬 영화로서 재치와 감각을 보여주었지만 감동이라는 단어와는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도 먼 관계’였다. 보고 나서 도대체 이 영화가 어떻게 해서 타임지 10대 영화이며 칸 영화제 개막작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야 그저 광적인 영화 애호가일 뿐이지만, 모든 문화적 산물은 관객 한 사람의 만족과 감동에서 시작되는 것 아닌가? 나는 왜 감동하지 못하는가? 나의 감동 네트워크는 아날로그 시스템이라 그런가?
요즘 영화는 진지함과 치밀한 구성력과 앞뒤 아귀가 맞는 ‘아날로그적 시스템’을 과감히 벗어나 있는 것 아닌가? 어디든지 꽂을 수 있고 중간부터 보아도 이야기가 되고 진지한 감동보다는 순발력이, 재치와 군더더기가 없는 가벼움이 요즘 영화의 코드인가 생각했다. 디지털 패러다임 속에서는 모든 경험이 상업화되는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를 피한다. 그때 그때 짧은 접속을 통해서 체험을 나누고 체험의 가치를 정한다. ‘물랑루즈’나 ‘반지의 제왕’은 그런 점에서 인간의 체험이 고도로 상업화된 상황에서 어울리는 영화들이다. 슬프되 너무 부담스럽지 않기 위해서 영화는 가볍고 또 가벼워야 한다. 심오한 진리를 담는 것은 버거우므로 대사는 반복되고 단순한 것이 미덕이다.
이제 영화는 예술이 아니라 상품이 되었다. 상품을 사는 소비자는 쉽게 잊어버린다. 가볍게 소비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패러다임 속의 교활한 영화제작자들은 ‘2002년 겨울방학 때 2편을 기대하세요’라는 끝 자막을 보고 비분강개한 소비자들이 기억상실증에 걸려 다시 그 극장 그 자리에 앉을 것을 확신한다. 왜? 이제 영화는 대량생산되는 일회용 상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글·전여옥(인류사회 대표)
출처는
http://ctlife.mk.co.kr/movie/chungmu/2002/01/23/11,1011773844,11003,0,0.html
마음껏?! B웃어주세요
뒷말 : 제가 여기서 할 수 있는건 잡담 올리는 것 밖에 없는지라...
빨리 수련을 쌓아야 하는데... T_T
kongbw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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