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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사랑방입니다.
[2920] [시] 그녀는 사십에 죽었다 - 서석화
박정모 [] 2502 읽음    2001-12-23 00:30


더이상 사막을 만들 모래가 없어요
거짓 태양을 끌어들일 신기루도 없어요
버릴 것도 없으면서 포기라는 각서 쓰고
시든 상추 같은 마음엔
새벽마다 냉수를 들이부었죠
더 살고 싶었어요 진짜루요
병들고 늙은 어머니와 초콜릿 같은 내 아들
그리고 극약처럼 아름다운 남자 하나
내 눈 속에 있거든요
기를 쓰고 살았어요 그건 아시죠?
지옥의 열쇠를 열두 개 손에 쥐고
하루에도 열두 번 불구덩을 구경했죠
천국을 향한 기대만큼 입 안에 먹물이 고였어요
토하는 자리마다 얼음시계가 걸렸지요
성에 낀 시간 위로 내 머리칼이 얼어붙고 있었요
사십 년 세월이 벌목된 현장에
이젠 일 년도 더 세울 힘이 없군요
참, 한 가지 소원은 이루었어요
세상에서 만날 사람은 다 만났다는 거요
부탁드려요
제 손가락의 반지는 빼지 말고 그대로 둬 주세요
사백 년 뒤쯤 아름다운 내 남자
이 반지에 입맞추려 찾아올 거거든요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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