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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1] [시] 말을 배운 길들 - 김정란
박정모 [] 2231 읽음    2001-12-22 00:57


길들이 울면서 자꾸만 흘러갔다. 마음이 미어질 듯이 아팠다. 나는
길들에게 말했다. 울지 말고 말을 해. 길들이 울면서 대답했다. 우린
말할 줄 몰라. 길들이 가엾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 안으로 들어올
래? 길들이 흐느끼면서, 엄마, 라고 말했다. 나는 길들을 품에 껴안고
대지 위로 드러누웠다.

세상은 여전히 어두웠다. 나는 어둠 속에서 사물을 분별하는 법을
배웠다. 별로 어렵지 않았다. 내 안에 들어와 순하디 순해진 길들이
내 몸을 먹고 자라나 열 손가락 끝에다 말의 랜턴을 달아 주었으니까.
길들은 내 몸안에서 제 길을 따라간다. 세계의 저쪽에서 누군가 와서
길을 물으면, 나는 열 손가락을 쫙 펴고 가만히 드러눕는다. 그러면
그 사람은 나를 밟고 지나면서, 아, 열개의 지평선이군요, 이라고 말
한다. 나는 아녜요, 말을 배운 길들이예요, 라고 혼자 생각한다.

마을은 자꾸 고즈넉해진다.길들이 자꾸 하늘색을 닮아간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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