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스스로 황색언론이라고 자처하는 딴지일보 등이 정통 언론보다 더 사실을 잘 알려줄 때가 있습니다.
바로 이번 미국 테러 사건에 대한 분석 기사가 그렇지요.
자꾸 이런 얘기만 들추어서, 반미성향인 듯 비추어질까 좀 망설였습니다만..
테러가 일어난지 꽤 지난 지금도 국내 언론들은 정신을 못차리고 미국 장단에 춤을 추고 있으니...
함 읽어보시지요.
http://www.ddanzi.com/ddanziilbo/56/56p_56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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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휴머니즘을 경계한다
2001.9.13.목요일
딴지 특별취재반
신의 도시에 엄청난 뇌성이 있을 것이고,
두 형제는 카오스로 인해 무너진다.
성채가 견디고 있음에도 위대한 지도자는 굴복하며
큰 도시가 불탈때 세번째 큰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In the City of God there will be a great thunder
Two brothers torn apart by Chaos,
while the fortress endures, the great leader will succumb,
The third big war will begin when the big city is burning.
아아 두려운 일이다. 노스트라다무스가 몇백년전에 했다는 예언이 2001년에 벌어지다니... 두 형제(쌍둥이
빌딩)가 진짜로 무너졌으니 이제 3차대전이 시작되는가... 아아.. 이제 어찌해야 하는가. 해외로 토낄
것인가, 예비군 군복을 다리며 차분한 마음으로 삶을 정리해볼 것인가, 아니면 사과나무 묘목이라도 얼른
사다가 심을 것인가....
그런데. 그거 아시남?
저 시는 개뻥이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저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저 가짜 시는 사고 직후에 뉴욕과 워싱턴을
중심으로 돌기 시작하여 폭발적인 기세로 널리 알려진 이메일에 담겨 있던 내용으로, 누군가의 장난이라는
게 정설이다.
그뿐인가? 미국의 자작극이라느니, 수뇌부는 다 알고 있었는데 정치적 경제적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방조했다느니, 등등의 음모론도 미국에 팽배해 있다.
졸라 우습지 않은가?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는 미국넘들이 뭔 일만 생기면 노스트라다무스를 들먹이고,
각종 음모론과 미신이 난무한다. 사건 사고 많고 감춰진 성역이 많은 우리나라도 정감록이나 음모론으로
저렇게 난리치지는 않는다.
본우원, 엑스파일의 광팬이며 노스트라다무스 책은 너덜너덜해질때까지 읽어봤고 달착륙 구라설은 남들보다
몇 년 일찍 알고 있었다. 그러나 냉혹한 국제질서에 어설픈 음모론이나 미신의 설 자리는 없다.
그럼 미국 국민들이 유치하고 의심많고 나약해서 저런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미국 국민들이 바보같아서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의 분위기 자체가 그렇다.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하는 말부터가 딱 그렇다.
1. 선과 악의 이분법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무너진 그날 밤, 부시 대통령은 이렇게 연설했다.
오늘, 우리의 삶과 생명, 그리고 자유 그 자체가 고의적이고 치명적인 테러로 공격받았습니다. [중략] 사악
하고 비열한 테러행위로 수천의 생명이 갑자기 끝난 것입니다.
이러한 대량살상 행위는 우리 나라를 혼돈과 퇴보로 몰아 넣으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강합니다.
위대한 우리 국민은 위대한 국가를 지켜왔습니다. [중략]
미국이 공격을 받은 이유는,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밝은 자유와 기회의 횃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빛을 가릴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악함, 인간 본성 최고의 악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최고의 선으로 응답했습니다.
인명구조자들의 용기, 헌혈과 도움으로 낯선 사람들을 보살피는 따뜻함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중략]
오늘밤 나는 슬픔에 잠긴 모든 이들, 자신의 세상이 파괴된 모든 어린이들, 안정과 안전을 위협받은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요청합니다. "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시편23장 4절)" 모든 이들이 이 성경구철처럼 어떤 위대한 힘에 의해 위안받길 나는 기원
합니다.
오늘은 모든 미국인이 정의와 평화를 위해 단호한 결의를 한 날입니다. 미국인들은 전에도 적을 물리쳐왔으며
이번에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우린 누구도 이날을 잊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우리 세계의 자유와 선과 정의
를 수호할 것입니다.
Thank you. Good night and God bless America. (영어 전문보기)
한 마디로 줄이면 이렇게 되겠다. “자유와 기회와 선과 정의를 대변하는 미국이 악(evil)에 대항해서
싸우고 있다.”
미국이 공격받은 이유는, 미국이 가장 밝은 자유의 횃불이기 때문에 비문명과 야만세력의 음해를 받는다는
것이다. 절라 유치찬란한 문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게 그냥 정치적인 수사가 아니라, 정말로 사람들
이 그렇게 믿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것도 아주 감동적이고 비장하게.
미국인들의 자부심과 자신감. 이건 정말 부럽다. 솔직히 부럽다. 미국넘이 하나 다른 나라에 납치라도 당하
면 미국은 전쟁도 불사할 것처럼 난리를 떤다. 자국민 보호, 이거 무서워서 다른 나라는 미국넘들 함부로
못 건드린다. 우리로선 열받는 일이긴 하지만 주한미군 범죄에 대처하는 그넘들의 짓거리를 보라.
그러나 또 동시에 그들의 우월감이 오만함으로 이어지도 한다. 이건 단순히 자기들이 경제적으로 잘 살고
힘이 세다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미국인들에게 미국은 “선”이다. 자유와 인권을 온 세계에 전파하는
사도이며, 문명의 빛을 비문명에 전파하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월감 정도가
아니라 일종의 종교적 신념이며 이데올로기다. “람보”를 보면서 유치하다고 생각하는가? 미국이 딱 그렇다.
미국 대중의 수준은 딱 그정도라고 보면 된다.
미국의 세계 무력지배는 그 “미국 이데올로기”로 치장된다. 미국의 질서에 따르지 않으면 깡패국가
(rogue state)이고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존재이고, 심지어는 악이니 반문명이니 하는 거의 종교적인 색채로
덧씌워진다. 부시가 연설에서 괜히 성경을 인용한 게 아니다. 미국에서 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손에
화염병을 든 과격분자에다, 자살공격도 마다하지 않는 광신도들이며, 문명과 이성의 세계 저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 그들은 광신도가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그에 못지 않게 미국 이데올로
기의 광신도들이다.
물론 이번 비행기 테러와 같은 무차별 살상은 악이다. 그런 식의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고,
그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악에 대항해서 싸운다고 자동으로 미국이 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악과 싸우는 것은 또다른 악일 수도 있다. 아니 선이니 악이니 하는 구분 자체가 국제관계에서 뭔
의미가 있단 말인가?
2. 누구의 휴머니즘인가
팔레스타인인들이 이번 테러 소식을 듣고 환호했다고 한다. 사람 만명 죽은 걸 고소해하면서 기뻐 날뛰는
게 제대로 된 것은 분명히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본에 핵폭탄이 투하되어 20만명이 죽었을 때 우리 민족은 환호했다. 20만명의 남자,
여자, 노인, 어린애들이 싸그리 죽어 자빠졌을 때, 그래서 일본이 마침내 항복선언을 했을 때,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태극기를 들고 길거리에서 춤을 췄다.
팔레스타인인들이 기뻐한 것과 한국인들이 그 당시 기뻐한 건 다른 문제라구? 글쎄 별로 그런 것 같지가 않다.
1945년 이차대전 말미 독일의 드레스덴이라는 도시를 연합군은 쑥대밭을 만들었다. 800대의 폭격기로 이틀간
흔적없이 밀어 버린 것이었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는 드레스덴을, 인구 35만 중 10만명을 죽이고
건물 몇 개 달랑 남을 정도로 허허벌판으로 밀어 버리면서, 노인과 여자와 애들만 바글바글한 아기자기한
도시 하나를 때려 부수면서 연합군 측과 국민들은 고소해했다. 독일의 자존심을 꺾어 버렸다면서. 군사적인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그냥 독일의 상징과 자존심을 꺾는 게 중요했을 뿐.
이번에 미국의 자존심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타겟이 된 것도 똑같은 이유였다.
독자제위나 본우원이나, 우리는 다같이 폭력에 분노한다. 처자식 먹여살리는 것, 출세하는 것 밖에는 관심도
없던 애꿎은 사람 일만명을 일거에 죽인 폭력에 분노하며, 단 10분 전까지도 퇴근 후 데이트할 궁리하던
사람들이 창문을 열고 뻔히 죽는 줄 알면서도 까마득한 아래로 우수수 뛰어내리게 만든, 그 엄청난 폭력에
전율을 느낀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어딘가로 향하던 비행기 승객들, 고단한 일상에 지친 그들을 선택의
여지없이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 힘에 분노한다.
그러나.
도대체 그 분노의 대상은 누구인가? 분노의 똥침을 맞고 길바닥에서 게기적거리며 죽어자빠져야 할 인간은
누구인가?
20만을 죽인 핵폭탄에 분노한다고 해서 일본 편을 들 수는 없다. 어쨌거나 일본도 똑같이 핵폭탄을 개발중
이었고, 미국이 아니었더라도 일본이 먼저 사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테러도 마찬가지다. 비행기
테러에 분노한다고 해서 무조건 미국 편에 설 수는 없다.
어설픈 휴머니즘은 휴머니즘이 아니다. 칼기 폭파범 김현희에 대한 휴머니즘이 도대체 휴머니즘인가? 어설픈
휴머니즘은 오히려 거꾸로 폭력을 정당화할 할 수도 있다.
죽어간 미국인들을 보면서 느끼는 분노의 절반이라도 걸프전 때 죽어간 20만 이라크인들에게 느꼈더라면,
그 반의 반만이라도 지금까지 죽어간 10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쏟았더라면, 그리고 중동에 다시 전쟁의
불길을 지핀 부시 행정부에게 지금의 반의 반의 반이라도 분노했더라면, 오늘의 이 사태는 없었을지 모른다.
98년 미 대사관 테러에 대항해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수단의 제약공장을 모조리 때려부쉈다. 확인된
집계는 없지만 수만명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어느 누구나 다 자신의 정당성이 있다.
누구의 휴머니즘이 진정한 휴머니즘인가?
얼마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유명한 종교 지도자 한 명을 그가 앉아있는 빌딩 집무실로 헬기에서 미사
일을 쏴 죽였다. 폭탄을 터뜨려 죽인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유리창을 뚫고 들어온 미사일에 “맞아죽게”
했다. 그것을 미국과 한국의 언론은 이스라엘의 “보복공격”이라고 했다. 반면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목숨을 버리며 폭탄을 안고 돌진하는 것은 “자살테러”라 했다. 그때 그 언론 문구를 보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마음놓고 아랍의 테러세력들을 비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티비에서 스펙타클하게 죽어가는 미국인들에게 가지는 어설픈 휴머니즘은 지금까지 미국이 행사해 온, 혹은
미국이 앞으로 행사할, 더 엄청난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다. 폭력은 자신이 폭력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폭력은 언제나 휴머니즘의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그리고 때로는 “자유”와 “평화”와 “기회”와 “선”
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기도 한다. 저 위 부시의 연설처럼.
3. 중동은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 본우원, 반미하자고 외치는 것이 아니다. 아랍이라고 무조건 옹호하자는 것도 아니다. 현재 도마위에
오르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에 대해서 본지는 지난기사에서 분명히 그 말도 안되는 학살행위를
규탄한 바 있다.
미국이냐 아랍이냐 둘중 한쪽 편을 들자는 것이 아니다. 어느 한쪽이 악이라고 다른쪽이 선이라는 유치한
이분법을 써먹는 데는 우리나라에 딱 두 군데밖에 없다. 어린이용 만화영화, 그리고 빨갱이를 증오하는
좃선일보.
하고 싶었던 말은, 티비와 신문을 보면 온통 우리 눈을 뒤덮는 그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들, 입이 떡
벌어지는 그 장면들에 너무 지나치게 경도되지 말자는 것이다. 뜨거운 가슴이 휴머니즘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왜? 왜냐하면 이건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 일이기 때문이다. 이 일로 미국만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도 고통을 받을 것이고, 남북관계도 앞으로 어떻게 꼬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미국과 아랍의 관계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의 이익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사태의 계기가 된 부시의 안하
무인 외교정책에 대해서 발언할 권리가 있고, 중동문제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문제에 너무나 무지하다. 중동문제 전문가 이름 한 사람만 대 보라. 이런 거에 관심이
라도 가지고 있는 정치인 이름 한 사람이라도 대 보라. 우리는 왜 이리 폐쇄적이고 폭이 좁은가?
CNN만을 주구장창 내보내는 티비, 친미 친유대 일변도인 우리나라 언론은 대한민국의 국익을 해치고 있는
셈이다. 왜 우리가 남의나라 미국의 꼴통짓에 덩달아 날뛰고 그 피해를 봐야 하는가? 사고 후 뉴욕 맨하탄
에서는 유태인들이 공공연히 자기네 빵떡모자를 쓰고 삼삼오오 거리를 몰려다닌다는 본지 통신원의 소식이
들어오고 있다. 미국은 원래 그런 나라다. 유태인들이 꽉 잡고 있는 나라이고, 유태인들의 폐쇄성은 한민족
을 뺨친다.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이제 어디라도 애꿎은 희생물을 타겟삼아 폭탄을 쎄려부을지도 모른다. 기울어져가고
있는 미국 경제의 타개책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보복과 응징이라는 명분 아래. 왜 우리가 거기에 덩달
아 춤을 춰야 하는가?
(주 - 미국의 군산복합체와 이번 테러의 상관관계, 전쟁과 미국 경제에 대한 이야기는 좀 있다 다룰테니
좀 기둘려 보시라)
또하나, 한 나라가 강경 우익으로 치달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우리는 목하 목도하고 있다. 사실은
이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큰 교훈이다. 우익의 목소리가 균형있게 드러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지만,
그것이 강경 일변도로 나갈 때, 한 나라를 강경 우파들이 좌지우지 할 때.... 지나치게 강한 것은 부러진다
는 거, 동서고금의 진리 아니겠남?
좃선을 비롯한 재래 언론들이 “깡패국가 테러국가 북한을 더 옭죄어야 한다”고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허긴, 남북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꼴통 우익들이 비판받으면 비판받을수록, “우리끼리 좌우대립이
격화되어 냉전이 심해지고 있다”고 써제끼는 넘들이니 별 기대는 않는다만, 이래도 배우는 게 없다면 걔네
들은.... 구제불능이다.
뉴욕에 살고 있는 가족들 때매 철렁했던
딴지 편집장 최내현 (asever@ddanz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