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서울 잠실운동장에서 있었던 민주당 경선 투표에서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저로서는 우리나라에 몇번 없던 정치적인 쾌거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전 인간적으로 노무현을 잘 알지도 못하고, 고향이 부산이긴 하지만 노무현이 민주당으로 옮기기
전부터도 노무현을 지지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노무현을 인간적으로 지지하지도
않습니다. 정치가를 인간적으로 지지하는 자체는 아주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노무현의 정책이나 인간적인 면을 잘 알아서 '쾌거'라는 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저는 정치에 관심은 많지만 학문적인 면에서는 정치를 거의 모르는 절대 다수의 국민 중 한명일
뿐이기 때문에, 노무현의 사상을 학문적으로 표현하는 어려운 말들은 전혀 모릅니다만, 적어도
일반적인 국민 정서에서 '빨갱이'라고 부를 정도는 절대 아니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노무현이 개혁파이자 좌익에 가까운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좌익이라고 하면
빨갱이와 공산당을 연상하실 분이 많으실텐데, 우익과 좌익은 정치적인 경향을 말할 뿐이지 반드시
사회주의와 연관되는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건국이후 50년이 넘도록,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우익, 그것도 극우에 가까운 정당만이 집권을
해왔습니다. 민정당, 민자당, 한나라당으로 이어지면서 이 당들의 기조는 너무도 뚜렷하게 보수
우익만을 달려왔다고 생각합니다. 남북으로 갈려져 극단적으로 대치해온 그간의 역사 때문에,
보수 우익의 정치가들만이 살아남기가 쉬웠고 또 집권당은 정권의 연장 수단으로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기에 우익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통의 공화당에서부터 집권을 거듭해온 민정당-민자당-한나라당의 줄기찬 우익기조 덕분에 우리나라
사회 및 각 분야에서의 개혁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바꾸면 망한다"라는 인식이
집권 정치가들로부터 시작해서 사회 지도층을 거쳐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세뇌되다시피 주입되어왔기
때문일 겁니다.
반면에 오랜 야당생활을 해온 김대통령의 경우엔 개혁적인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지금의 김대통령이 집권 후에 정치를 잘해왔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체감하는 사회적인
결과로 봐서는, 김대통령의 통치는 실패작에 가깝습니다. 엄청나게 뛰어버린 각종 사회보험료
(특히 건강보험료!)나 그밖의 자잘한 실패 사례를 많이 들 수 있을 겁니다.
특히 인맥을 중시하는 그의 등용 성향이 나쁜 결과를 많이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김대통령 자신이 잘못했거나 노력이 모자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그간의 역대 정권에 비하면 상당한 개선을 이루어냈습니다. 사실 국민들이 원하는 만큼의
제대로 된 개혁을 하지 못했다는 것도 아쉽습니다. 하지만 제 인식에서는, 그것은 김대통령 자신의
문제였다기보다는 그를 둘러싼 측근들의 부패나 무능, 그리고 그동안 사회를 장악해왔던 사회지도층
의 문제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김대통령의 고령도 과감한 추진에 장애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대통령의 집권 기간동안의 단기적인 결과가 현재로서는 별로 합격점은 아니라고 느껴집니다.
하지만 기대보다 못했을 뿐이지, 그간의 역대 정권에 비해 많은 개선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김대통령이 지금 개혁의 칼을 대어놓은 크고작은 일들중 많은 것들이 길어도 수년 내에
효과가 나타날 거라고 믿습니다.
물론 장기적으로 봐도 실패인 정책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김대통령 자신의 존재부터 그가 해놓은
여러 변화의 시도들이 집권당에서부터의 개혁적인 시도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고 하는 면에서,
우리나라 정치사에 큰 획까지는 안되더라도 상당히 긍정적인 발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김대통령이 해놓은 것은, 근본적인 변화 혹은 개혁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고 느껴집니다.
그가 개혁적인 시도들을 몇가지 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3김 시대 구태정치의 핵심 인물중 한사람입니다.
20대 초반까지의 어렸을 때는 사실 한나라당을 지지했습니다. 자세한 영문은 전혀 모르고 막연히
'전라도가 집권하면 망한다'는 논리가 퍼져있던 주위의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동화되어있었고,
그래서 김대통령이 선출되었을 때는 정말 나라가 망할 줄 알았습니다. 한나라당에서는 김대통령을
일방적으로 빨갱이로 몰아갔고, 전부는 아니더라도 조금쯤은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대충 믿어버렸
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김대통령도 나름대로 잘 해왔고, 당장이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는 면에선
좋은 시도를 많이 했습니다. (물론 실패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정치를 바라보는 제 시각도 많이
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경우처럼, 전라도가 집권을 했는데 나라가 망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영남쪽의 반호남 지역
정서는 많이 줄어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간의 한을 어느정도라도 풀었다는 면에서
호남의 반영남 정서도 상당히 줄었을 거라고 (제맘대로) 추측합니다.
지금 돌아보면, 김대통령의 집권은 지역감정 돌파의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일제시대처럼 민족주의자 한사람이 나서서 강변한다고 쉽게 변할 수십년간의 지역정서가 아니니까요.
아, 이렇게 떠들면 제가 민주당 지지자인 것처럼 느껴지겠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간의 저질 정치를 벗어나 조금씩이라도 발전되는 정치가들의 면모를 보고 싶을 뿐입니다.
그간의 정치에 대해 실망과 좌절을 한 것은 저뿐만이 아니겠지요. 대다수 국민들이 동의하실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과 같은 개혁적인 사람의 정치 전면에의 등장은 시대적으로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고 보입니다. 눈뜨고는 못볼 정도의 개판 정치에 실망할 대로 실망한 국민들의 변화에의 열망이,
집권당 내에서의 노무현의 전면 등장이 불씨가 되어 활활 타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노무현 잘 모릅니다. 그가 부산출신이고 제가 자주 놀러다니던 서면에 있던 부산상고 출신이란
것 외에는, 그 사람이 얼마나 바른 양식을 갖고 있는지조차도 전혀 모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상고 졸업후 독학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한 그의 학력이 보편적인 양식을 필요로 하는
집권자에게 걸맞는지 좀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제 바꿔볼 때가 되었습니다. 그가 젊은 시절에 보여준 급진적인 개혁 성향이
당장 최고 집권자로서는 좀 부담스럽긴 합니다. 하지만 설사 그가 지금도 타협없는 급진적인 개혁
의지만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간 우익 보수에 질릴대로 질렸으면서도 계속 표를 던져준 우리
국민들의 업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들 스스로가 표를 통해 변화의 시도를 해보고 그 결과를 감내하고,
그리고 그 시행착오로부터 정말 적합한 인재를 선출해낼 수 있는 소양을 스스로 길러내는 것이
우리나라 정치 발전의 유일한 방법일 겁니다.
그래서 전 노무현을 지지합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사람을 지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을 스타로 만들어놓은 국민들의 변화에의 열망의 표출 지지합니다.
사실 그가 젊은 시절에 보여준 타협을 모르는 급진적인 성향은 최고 집권자로서는 충분히 문제가
되는 면입니다. 하지만 이번 경선에서 그는 수없는 음모론과 공격에도 불구하고(그 음모론이 사실이
었다고 하더라도) 개혁적인 인사로서는 아주 모범적인 대응 자세를 보여줬습니다. 그가 만약 정면
대응만으로 일관했더라면 노풍은 순식간에 사그러졌을지도 모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의 부패와 저질스러움은 누구보다도 국민들 스스로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우리 지역 사람이기 때문에 지지하고, 이사람이 뽑힐 거 같으니까 지지하고, 얼핏 보니
무난해보이니까 지지하고, 지난번에도 표 줬으니까 또 표를 주고, 국민들의 투표에 대한 인식이
그 정도니까 그 결과로 정치도 그 정도인 겁니다.
대표시삽 주제에 이런 글을 쓰면 불법 선거운동에 해당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여러분도 노무현 지지해달라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다수 국민들의 진지한 정치 의식만이 우리나라의 정치를 개선시키는 유일한 길이기에, 국민들의 저력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도)을 보여준 것으로 보이는 이번 경선 결과가 정말 반가워 쓰는 글입니다.
물론, 노무현을 반대하는 분들께는 이번 결과가 국민들의 민의이기보다는 음모로 느껴지기가 쉽겠습
니다만, 저와는 지지 후보가 다른 그런 분들께도, 진지하게 계속 지지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진지한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투표로 노무현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역시 우리나라 정치의 변화를
위한 시도일테니까요.
저도 1~2년 후에 계속 노무현을 지지할지는 지금도 모릅니다. 결과에 실망했다면 지지후보를 바꾸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국민은 정치가에게 냉정해야만 합니다.
국민이 정치가에게 의리를 느껴서 계속 지지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대선 결과에서 적합한 사람을 뽑는데는 실패할지는 몰라도, 국민의 진지한 열망으로 변화의
시도를 해봤다는 것은 그 결과의 성패와는 무관하게 정치 발전의 첫 발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알면서도 대단히 위험한 글을 썼습니다.
제 글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기분이 나쁘실 분도 적지 않을 거 같습니다.
노무현을 지지하기 위해서 글을 쓴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경선 승리가 정치 발전의 초석이 되리라
생각해서 너무나 기쁜 맘에 썼을 뿐이란 것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생각이 다른 분들의 리플도 환영입니다. (좀 부담스럽긴 합니다만)
하지만 저질 정치에 실망을 느껴오신 분이라면, 제게도 저질스런 공세는 말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기럼...
|